[한겨레21]딸기밭의 그녀가 크레인의 그녀에게 [2011.11.21 제886호]

딸기밭의 그녀가 크레인의 그녀에게 [2011.11.21 제886호]
[특집] 309일 85호 크레인에 밥을 올려주며 세상과 이어진 끈이 되었던 황이라씨…
김진숙 지도위원과 같은 집에 사는 그녀의 마음을 편지로 녹이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왼쪽)이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와 황이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선전부장을 만났다. 309일 동안 황 부장은 김 지도위원의 밥과 생필품 보급을 책임졌다. 황씨는 감격해 울었고, “울지 않겠다”던 김 지도위원도 눈물을 보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땅에 내려섰다. 크레인에 올라선 지 309일이 되던 지난 11월10일 오후 3시27분이었다. 같은 시각 <한겨레21>은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환영 인파를 뒤로하고 삐걱거리는 예순두 개의 계단을 올라 중간 난간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가빠진 숨을 잡았다. 본격적으로 오르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수직으로 꼭대기에 이르는 통로의 문 앞에 섰다. 309일 전 새벽, 김 위원은 황막한 조선소 겨울바람을 맞으며 쇠톱으로 그 문의 잠금장치를 잘라냈다. 3시간이 걸렸다. 어른 키 높이의 철문은 그렇게 입장을 허락했다. 김진숙 위원은 그 안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김 위원이 떠난 그 문을 열고 기자가 들어섰다. 깜깜했다. 고개를 쳐들었다. 수직으로, 김 위원이 올라간 크레인의 끝이 보였다. 빠끔히 보이는 그곳의 햇살이 올라가는 지점을 알리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곳을 김 위원은 묵묵히 올랐을 것이다. 그 계단을 기자도 올랐다. 문턱까지 수직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예순한 개의 사다리 계단을 올라, 그가 머물던 곳에 도착했다. 바람이 차고 셌다. 그 바람에 크레인이 흔들렸다. 환영행사의 노랫소리가 윙윙거렸다.

수직으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간 크레인의 끝이 보였다. 빠끔히 보이는 그곳의 햇살이 올라가는 지점을 알리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곳을 김 위원은 묵묵히 올랐을 것이다. 그 계단을 기자도 올랐다. 문턱까지 수직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예순한 개의 사다리 계단을 올라, 그가 머물던 곳에 도착했다. 바람이 차고 셌다. 그 바람에 크레인이 흔들렸다.

크레인에 오르며 메모를 남긴 사람

“나 없으면 따뜻하게 지내. 밥 잘 먹고. 평소처럼 많이 웃고.”(김진숙 지도위원이 함께 살던 황이라씨에게 남긴 메모)

두어 달 전 황이라(31)씨는 “김 지도”(황이라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꼭 ‘김 지도’라고 부른다)와 나눈 얘기, 그간 겪은 얘기를 되짚는 글을 <한겨레21>에 전달하기로 돼 있었다. “편지 형식으로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85호 크레인을 둘러싼 긴박한 상황 탓에 기고는 미뤄졌다. 지난 11월9일, 김 지도위원이 내려오기로 돼 있던 308일째 되던 날, 다시 기고를 요청했지만 김 지도위원이 내려오면 그가 곁에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더구나 경찰은 돌연 김 위원이 내려오자마자 체포하겠다며 크레인 밑을 에워쌌다. 황씨는 펜을 잡을 여유가 없었다. <한겨레21>은 그의 구술을 편지로 재구성하기로 했다.

트위터의 김여진, 거리의 희망버스, 그리고 크레인에 밥을 올리는 황씨는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김 위원에게 숨을 불어넣은 309일의 생명줄이었다. 김 위원은 내려와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인사를 마치자마자 김여진씨를 오른쪽에, 황씨를 왼쪽에 세웠고 희망버스에 감사하다는 말을 꺼냈다. 농성 기간 중에 황씨는 김 지도위원의 모든 끼니를 챙겼다. 그뿐만 아니다. 음식, 대·소변, 철을 달리하는 옷가지 등을 밧줄에 달아 올리고 내렸다. 김 위원이 털어놓는 35m 위의 고충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김 지도가 크레인에 오르기 5일 전이었죠. 새해 첫날 밤. “우리 보일러 틀고 거실에서 같이 잘래?” 깜짝 놀랐어요. 김 지도에게 무슨 일이 있나 했죠. 함께 산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난방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그날 이미 김 지도는 크레인에 오를 생각이었던 것이죠. 미욱한 저는 그냥 “그래요, 좋아요” 하면서 신나했죠. 그날, 그런 나를 보며 김 지도는 무슨 생각을 했나요.

그날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기억나죠? 보일러를 틀었더니 바닥에서 쩍쩍 소리가 나기 시작했죠. 바닥이 터질 듯한 소리에 놀라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처음 입주하고 나서 보일러를 돌리면 그런 소리가 나기는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며 아저씨가 당황해했죠. 우리는 웃었어요. 아저씨 말이 맞았던 것이죠. 보일러를 처음 돌리는 거니까. 그날 그 소리에 잠도 못 잤지요. 그 뒤로 닷새, 다시 우리 집은 냉골이 됐죠.

기자들이 김 지도랑 같이 사는 걸 알고는 꼭 물어보는 게 있어요. “정말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서 세상 뜬 뒤로 냉골에서만 자나요?”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웃고 말죠. 저도 믿지 않았으니까. 사람들도 설마 했겠죠. 처음 김 지도의 방에 들어갔을 때 발이 시릴 정도의 냉기가 저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겨울에도 아침마다 찬물로 몸을 씻는 당신에게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요.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싶기도 했어요. 김 지도는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 때문만일까요. 김 지도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것만으로 그런 삶이 가능할까요. 김 지도는 웃기만 합니다. 그때 말랑하고 따뜻한 손으로 전하는 온기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말했죠. (황이라씨가 85호 크레인 농성 309일을 정리하며 김 지도위원에게 전하는 편지-1)

»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며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모습. 뒤로 크레인을 함께 지킨 동료의 모습이 보인다.

스물여섯, 동갑내기 해고자들

황씨는 김 위원이 올라간 그날부터 단 하루도 김 위원의 85호 크레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크레인에서 가까운 노조사무실, 농성장 등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을까. 6월27일. 법원이 김 위원에게 퇴거명령을 내리고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날이다.

6월27일, 법원이 퇴거명령을 내리고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경비용역을 고용해 노조원들을 끌어냈죠. 그날 저는 85호 크레인 아래 컨테이너 창고에 문을 잠그고 숨었어요. 모두가 잡혀나가는 상황에서 김 지도를 지키겠다고 크레인 중단부에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차렸죠. 저도 거기에 가려고 했고요. 김 지도는 저한테 바깥과 농성장을 이어줄 수 있는 제3의 장소에 있어야 한다고, 붙잡히지 말아야 한다고 그랬죠.

저는 무조건 남아서 밥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김 지도와 약속했으니까. 김 지도가 편하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순간이 밥이 올라가는 그 순간이라고 말했으니까요. 다급하게 숨어들고 보니 창이 없는 컨테이너 창고였어요. 전깃불이 보였지만 불을 켜면 불빛이 새나가 들킬까봐 그 암흑 속에서 숨죽여 하루를 보냈죠. 무슨 낌새를 챘는지 밖에서는 용역들이 들어오려고 문을 부술 듯 두드리고. 그 와중에도 김 지도의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6월 말이면 여름인데 왜 그리 추웠는지, 그렇게 무서운 순간에도 왜 그리 배가 고팠는지.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나지 않았어요. 지부장이라는 말에 문을 열고 보니 바깥은 해가 넘어가고 있었죠.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한나절을 그 안에 있었어요. 이틀 만에 인권위원회 덕분에 다시 제가 밥을 올렸죠. 크레인에 밥을 올리고 돌아오는데 “고맙다, 고맙다”는 외침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편지-2)

강제집행이 있은 뒤 85호 크레인 위에는 김 위원과 그 아래를 지키는 8명의 노조원이 남았다. 회사 쪽에서 고용한 경비용역 수백 명이 에워쌌고, 전기와 음식 등의 공급을 중단했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섰다. 최소한의 음식과 물을 넣도록 협상했고, 단 한 사람만 하루 세 번 밧줄에 물품을 달아 올릴 수 있게 통행을 허가했다. 그 한 사람이 황이라씨다. 그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선전부장이다. 김 위원의 동료인 셈이지만 김 위원에게는 그 이상이다. 김 위원과 함께 수년 동안 동거해온 사이이기도 하다. 황씨는 2006년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해고자로 김 위원을 만났다. 황씨도, 김 위원도 20년을 걸러 스물여섯 살이라는 같은 나이에 해고자가 됐다는 이유 하나로 친구가 됐다. 황씨는 김 지도위원을 ‘김 지도’라고 불렀다. 그에게 ‘지도’라는 호칭은 직책의 줄임말이 아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젊은 시절 그를 이끈 ‘맵’(map)이기도 하고, ‘진숙’을 대신하는 애칭이기도 하다.

“저는 무조건 남아서 밥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당신과 약속했으니까. 김 지도가 편하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순간이 밥이 올라가는 그 순간이라고 말했으니까요. 다급하게 숨어들고 보니 창이 없는 컨테이너 창고였어요. 전깃불이 보였지만 불을 켜면 불빛이 새나가 들킬까봐 그 암흑 속에서 숨죽여 하루를 보냈죠.” 황이라씨 구술 편지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한 당신

누군가는 오늘도 김 지도를 투사로 영웅으로 받들고, 다른 편에서는 과격한 외부 세력으로 규정짓고 삿대질하는데 김 지도는 웃네요. 그런 김 지도도 크레인 위에서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어요. 맞죠?

올라가고 두 달인가, 100일이 좀 지나서 김주익 지회장이 8년 전 버티다 숨진 기간인 129일이 다가오자 아래에서도 불안해하던 때였죠. 김 지도가 그랬어요. 온통 차갑고 딱딱한 쇠붙이만 손에 닿으니 너무 힘들다고.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그래서 부산 북구 구포시장에서 4만원, 4만5천원을 주고 하얀 잡종 백구 두 마리를 사서 밥이랑 함께 조심스럽게 크레인으로 올렸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김 지도는 두 마리 모두 높은 크레인이 무서워 걸음도 제대로 못 내딛는 걸 보곤 곧바로 내려보냈죠. 그러고는 녀석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종종 물었죠. 한 녀석은 ‘연대’, 한 녀석은 ‘투쟁’이라고 이름을 지어주면서 말이에요.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투쟁이는 얼마 안 돼 죽고 말았어요. 마음 아플까봐 말을 못 꺼냈어요. 집에 있는 식물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기뻐하고 걱정했던 걸 보면, 투쟁이가 그리 된 걸 알고 있었던 듯도 하네요. 사람들은 알까요, 김 지도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투쟁이는 갔지만 연대는 지금도 크레인을 오가며 꼬리를 흔드네요. (편지-3)

85호 크레인 조종실로 다가갔다. 통로 좌우로 파이프로 이은 난간이 휑하다. 김 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간 직후 했던 ‘다리가 떨려 발을 내딛기 힘들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철문에서 열여섯 걸음, 조종실에 앉으니 35m 아래 조선소 바닥이 떠오르는 듯 현기증이 일었다. 크레인 조종석 발 아래를 작업하기 편리하라고 유리로 만들어서 울렁거림은 증폭 됐다. 아래로 환영행사가 보인다. 김 지도위원이 꽃다발을 들고 황씨를 부둥켜안는다. 1차 희망버스 인파가 금세 크레인으로 뛰어올라 다들 함께 부둥켜안을 것 같다던 김 위원의 말을 이제야 알아듣겠다.

“차라리 오지 말라고 해야겠어. 마음이 너무 되다….”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이 물대포를 맞고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김 지도가 한 말이죠. 그러면서도 또 오겠다며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이기도 하고요. 희망버스가 얼마나 고맙고 경이로웠는지. 그 얘기를 하며 우린 많이 웃었죠. 민주노총에서 조직된 사람들만 보다가 역동적이고 자발적인 사람들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 놀랍다 그랬죠. “손도 못 흔들어주는데, 왔다고 환영도 못해주는데, 그냥 여기까지 오지 말라고 해야겠어.” 저도 그때 몰려든 전투경찰만 실컷 보고 희망버스 사람들은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들이 있으니까, 김선우 시인도 김여진씨도 수많은 지지자들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버틴 거니까 감사하자, 그랬죠. 감사한 만큼 미안함도 커서 괴롭고 힘들었어요, 그때. (편지-4)

» 309일 만에 문이 열렸다. 김 지도위원의 표정이 밝다.

“우리 그냥 평범하게 살아요”

조종실에 걸려 있는 달력은 1월에 멈춰 있고, 조종석 뒤로 이불 한 채가 반으로 접혀서 깔려 있다. 김 위원이 몸을 누이고 비바람을 피한 공간이었다. 아래로 발이 위로는 머리가 닿을 정도다. 좌우로는 양팔을 뻗을 수 없다. 아래 도로에서 큰 트럭이 지날 때 바닥이 울리고, 환영행사 앰프 소리로 크레인 철벽이 울렸다. 309일의 짐을 싸는 데는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베개 하나, 요 두개를 개고, 이불을 챙겼다. 그것만으로도 조종실이 텅 비었다. 마지막으로, 조종석 옆 한 뼘쯤 하는 화초가 자리를 잡았다. ‘호야’였다. 김 위원은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물을 주었던 모양이다. 화분이 물기로 촉촉했다.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네.” 오십이 다 돼 처음 먹어본다는 피자를 신기해했죠. 그런 김 지도를 보며 많이 웃었어요. 나오면 평범하게 살아요. 주말이면 평소처럼 늦잠 자고 일어나서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가서 때도 벗기고 오고. 같이 걷던 온천천 산보도 하고. 시장도 보고.

다시 청춘이 되어도 그리 살 거라고 말하는 걸 보며, 앞으로는 그리 살지 말자는 말밖에 못하겠지만. 우리 그냥 평범하게 살아요. 그러면 안 될까요. (편지-5)

내려오는 길, 아래로 통하는 철문 옆으로 스티로폼으로 만든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김 위원이 트위터를 통해 알린 방울토마토, 상추, 딸기를 키운 곳인 듯했다. 단번에 안아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이미 세 알을 수확했다는 방울토마토는 보이지 않았고, 상추도 더 이상 심지 않은 듯했다. 지금은 딸기로 보이는 묘종 흔적만 남아 있었다.

마흔일곱에도 해고자로 남아 있는 제가 20년 세월의 무력감과 죄스러움을 눙치기 위해 스물일곱의 신규 해고자에게 어느 날 물었습니다.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내게 저토록 빛나는 청춘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볼 때마다 꿈꾸게 되는 맑은 영혼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어요.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 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부디 저 고운 영혼들이 꽃보다 먼저 환해지는 봄이길. 봄마저 쟁취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봄이 부디 저들의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진숙, <소금꽃 나무>, ‘봄은 모두에게 평등했는가’ 중)

봄에는 함께 딸기밭 가기를

김 위원의 글에 등장하는 딸기밭에 가고 싶어 하는 청춘이 바로 황이라씨다. 김 위원은 내년 봄 황씨에게 삼랑진 딸기밭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했다. 309일의 흔적이 곳곳에 밴 계단과 통로, 몸을 잠시 누일 수 있는 공간까지 최소한의 배려만 존재했던 85호 크레인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는 그 속에서 약속대로 살아 내려왔다. 11월11일 현재 김 지도위원은 부산 동아대 병원에 입원해 정밀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옆을 황이라씨가 여전히 지키고 있다. 내년 봄, 그들은 약속대로 딸기밭 산보를 가야 한다. 이제 노조와 회사가 나눈 땅의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

부산=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309일 동안 김 지도위원이 지냈던 세상의 끝, 1평 남짓한 공간. 이불 한 채를 다 깔지 못할 정도로 좁다.

카테고리: 보도자료모음, 칼럼 | 댓글 남기기

[오마이뉴스]“사회적 연대, 희망버스는 계속 달려야”

“사회적 연대, 희망버스는 계속 달려야”
[인터뷰] 희망버스기획자 송경동 시인, 문화연대 신유아씨 “아직도 곳곳에는…”
11.11.10 18:59 ㅣ최종 업데이트 11.11.10 18:59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동료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관계자들 앞에서 소감을 밝힌 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그는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다. 기자에게 거듭 양해를 구했다. 오늘 ‘승리의 영예’는 자신이 아니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희망버스’에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나눠야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송경동 시인(자료사진).

ⓒ 권우성
송경동

송경동 시인. 그는 한진중공업 부당해고 사태를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린 ‘희망버스’를 기획했다.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를 통해, ‘사회적 연대의 장(場)’을 마련했다. 물론 그 혼자만이 아니다. 한진중 사태가 마무리됐던 10일 오후 송 시인을 비롯한 희망버스 활동가들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한진중 사태가 해결된 것에 대해 간단한 소감을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송 시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고생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오늘 만큼은 조금 기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동안 시대적인 아픔과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크레인에서 300일 넘게 고생하신 김(진숙) 위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서 “희망버스를 통해서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희망버스와 같은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다”면서 “수많은 노동자와 도시빈민들, 그리고 900만에 달하는 비정규 노동자와 가족들”이라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은 현재 야간집회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다. 경찰 출두 여부에 대해서, 그는 “그동안 경찰을 피해 다닌 적도 없었다”면서 “희망버스분들과 충분히 상의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당당하게 질 것”이라고 말했다.

▲ 송경동 시인(자료사진). ⓒ 권우성

신유아씨 “정리해고가 없어질 때까지 희망버스는 달릴 것”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 오기 전 동료 노동자와 희망버스 관계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향후 희망버스의 계획에 대해, 송 시인은 “한진중 사태와 관련해 예정됐던 6차 희망버스 진행 여부는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며 “아직 어떤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희망버스에서 일하고 있는 문화연대 활동가 신유아(41)씨는 “희망버스의 형식이나 방식이 과거와 약간 달라질 수는 있지만, 정리해고가 없어질 때까지 (희망버스는) 달릴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씨는 이어 “뭔지 모르겠지만, 좀 우울한 느낌이 든다”면서 “김진숙 지도위원께서 살아서 내려오신 것에 대해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만의 운동만은 아니다”면서 “(희망버스 운동의) 취지는 정리해고 없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씨는 “한진중공업도 이번에 해결됐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최근 또 다시 조합원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카테고리: 보도자료모음, 칼럼 | 댓글 남기기

[오마이뉴스]김여진 얼싸안고 ‘눈물’… 김진숙 “고맙다”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서 승리한 소금꽃

김여진 얼싸안고 ‘눈물’… 김진숙 “고맙다”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서 승리한 소금꽃
한진중 노사 잠정합의안 ‘무투표’ 가결…크레인 농성자 3명도 내려와

[최종신: 10일 오후 6시 2분]

▲ 김진숙 지도위원 '착지' 순간 농성에 들어가며 "반드시 살아서 크레인을 내려가겠다"고 한 김진숙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본인 약속대로 '살아서' 내려오는 순간 마지막 계단에서 점프하 듯 땅에 발을 내디뎠다. ⓒ 권우성

▲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309일 만에 땅을 밟았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10일 오후 3시 15분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지난 1월 6일 새벽 몰래 혼자 올라갔던 크레인 35m 높이에서 농성을 해제했다.

크레인을 사수하기 위해 지난 6월 27일 중간층에 올라갔던 박성호·박영제·정홍형씨도 137일 만에 내려왔다. 김 지도위원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쳤다.

9일 한진중공업 노사가 했던 잠정합의안에 대해 조합원들은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 조합원들도 공장 안으로 들어간 가운데, 10일 오후 2시경 영도조선소 단결의광장에서 조합원 총회가 열렸다.

정투위 조합원들은 정문을 통해 공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경비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채희완 부산대 교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등도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은 꽃다발과 환영 펼침막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총회는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 보고를 한 뒤, “이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조합원들은 “이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정합의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한 것이다. 현장에는 10개의 기표소를 설치해 놓았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곧바로 조합원들은 85호 크레인으로 이동했다. 노조 지회 일부 간부들이 크레인에 올라가 내걸어 놓았던 펼침막 등을 정리하기도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짐을 꾸려 밧줄에 매달아 아래로 내려보내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이 농성했던 크레인 35m 위에 올라갔던 <노동과세계> 이명익 기자는 “농성장은 정리가 돼 있다. 쓰레기는 한 곳에 모아져 있다. 특이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짐을 꾸리고 농성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조합원들은 크레인 아래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파업가’를 부르며 연대를 다지기도 했고, “김진숙 지도위원님 보고 싶습니다”고 외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언론사 취재진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출입 금지된 기자들은 85호 크레인 앞 도로 쪽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경비원과 경찰이 없는 상태였다. 사다리를 놓고 촬영하던 취재진 가운데 일부는 담을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뒤늦게 경찰이 와서 “위험하다”며 내려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3명의 농성자들은 농성 숫자가 붙어 있는 중간층 앞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은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손을 들어 인사하면서 “고맙습니다”를 외쳤다.

▲ 309일간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박성호, 박영제, 정홍형)이 85호 크레인을 내려 오기 전 동료 노동자와 희망버스 관계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농성자들에게 동료들이 꽃다발을 안기며 환영하고 있다. ⓒ 권우성

크레인 아래에서 집회를 연 뒤, 김진숙 지도위원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때 많은 조합원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과 박성호․박영제․정홍형씨는 영도조선소 본관 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당시 현관 앞에는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홍영표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의원, 김정길 전 장관 등이 나와 있었다.

농성자들은 기자들 앞에서 짧게 소감을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저는 살아서 내려올 줄 알았다. 희망버스와 조합원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여러분들이 저를 살려 주었다”고 말했다.

박성호씨는 “정말 고맙다. 땅을 밟게 되어 고맙다. 희망버스의 힘을 받아서 앞으로 투쟁 현장을 다니며 희망을 전파하겠다”고, 박영제씨는 “고맙다. 사랑한다”고, 정홍형씨는 “모두 고맙고,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장에는 탤런트 김여진씨도 참석했다. 김씨는 임신한 상태인데 제법 배가 불렀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김여진씨를 보고 한참 동안 부둥켜 안았으며, 김여진씨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은 “밥을 많이 먹고 온 것 같다. ‘김여진과 날라리’가 정말 많은 힘이 되었다”면서 김씨를 소개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씨는 “할 말이 없다. 이 날이 오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는지 모른다. 1차 희망버스 다녀가고 나서 아기를 가졌다.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 한진중공업 본관앞에서 농성자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배우 김여진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 한진중공업 본관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신중임에도 불구하고 부산까지 내려온 김여진씨가 소감을 말하던 중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희망버스 기획단 김예진씨는 “송경동 시인 등이 수배가 되어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바람들이 모여 연대하면서 300일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서 “희망버스에는 철거민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함께했다. 그런 마음을 알고 연대하는 동지들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참석자들과 함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쳤다. 김 지도위원 등이 인사를 하는 동안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등 참석자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과 3명은 현관에서 10m 정도 떨어져 있는 정문 앞으로 걸어가 대기하고 있던 응급차를 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을 동아대병원으로 후송했다. 이들은 건조물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로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부산 영도경찰서는 이들에 대해 병원에서 건강진단과 치료를 받게 한 뒤 조사할 방침이다.

▲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를 타러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환영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 구급차에 탄 김 지도위원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도경정 회장은 “기쁘다. 모두 건강하게 내려와서 기쁘다. 남편이 해고자인데 이제부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가대위’ 홍미애(38)씨는 “김 지도위원을 만나면 울 것 같다. 모두 고생했다. 지난 6월 27일 이후 해고자들과 함께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비와 땡볕을 맞았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박은경(31)씨는 “건강하게 내려와서 감사하고 다행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일본 노동자들도 와서 지켜보았다.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동조합 조합원 25명이 한진중공업을 찾아온 것이다. 고야노 타케시 서기장은 “용기 있게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사람이 진심으로 싸우는 모습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일본 노동자들한테도 많은 용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이날 “한진중공업은 부산의 향토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이제 남은 것은 정상화이고, 협상을 통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오랜 협상과 노사 양쪽 모두 양보를 통한 이번 결과에, 부산시민과 함께 환영한다. 한진중공업이 부산경제 활성화의 견인차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5신: 10일 오후 4시 28분]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된 뒤 사수대로 137일간 함께 농성을 벌인 해고노동자 3명과 함께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한진중공업 본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김 지도위원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친 뒤 손을 흔들며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은 10일 영도조선소 본관 앞에서 “저는 살아 내려올 줄 알았다. 여러분과 조합원들의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여러분들이 저를 살려줬다”고 간단한 소감을 밝혔다.

특히 그는 농성 기간 동안 트위터로 응원해준 배우 김여진씨를 얼싸안고 진한 눈물을 흘렸다.

김 지도위원은 김씨가 임신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듯 “밥을 많이 먹고온 것 같다. 김여진씨의 힘이 컸다”고 소개했고, 김씨도 “할 말이 없다. 이 날이 오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는지 모른다”며 감격해 했다. 김씨는 “1차 희망버스를 다녀온 뒤 아기가 생겼다. 너무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약식 기자회견을 마친 김 지도위원은 경찰들과 함께 동아대 병원으로 이동했다

[4신: 10일 오후 3시 25분]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이 크레인 농성 309일 만에 마침내 땅으로 내려왔다.

김 지도위원은 10일 오후 3시15분경 85호 크레인 중간층 농성자 3명과 함께 손을 흔들고 인사한 뒤 지상으로 내려왔다.

노조는 김영훈 민노총 위원장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농성자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는 등 환영행사를 열었다. 김씨는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소감을 밝혔고, 현장에서 별도의 연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문 앞에는 농성자들을 연행할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경찰은 농성자들이 진료 받을 병원으로 부산대·동아대 등 대학병원들을 고집하는 반면, 노조는 사하구의 오케이 오병원으로 갈 것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 김진숙 지도위원이 동료 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 권우성

[3신 : 10일 오후 2시 40분]

한진중공업 잠정합의안이 무투표로 가결됐다.

노조에 따르면, 차해도 한진중 지회장이 합의안을 설명한 후 “이의 있느냐”고 물은 뒤 조합원들이 “이의 없다”고 답하자 이를 만장일치로 해석해 가결됐다. 조합원들은 곧바로 김진숙씨가 있는 85호 크레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2신 : 10일 오전 11시 55분]

한진중공업 정투위가 10일 오전 금속노조 교섭대표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교섭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고, 합의안에 대체로 반대하는 주장들이 많았다”고 험악한 분위기를 전했다.

한 조합원은 “부당해고를 당했으니 원직복직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노조 집행부가 합의안 효력 등 제반사항에 대해 정투위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이걸 받아들이면 안 되지 않냐는 주장도 있었지만 ’1년 뒤 복직된다면 이 정도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는 1시간~1시간 반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합의안 이 가결되면 85호 크레인으로 가서 김진숙 등 고공농성자 환영식을 열 계획이다.

[1신 : 10일 오전 10시 35분]

한진중 잠정합의안, 해고-비해고자 받아들일까?

1년여 만에 나온 한진중공업 노-사의 ‘정리해고 철회 잠정합의안’을 해고·비해고자들은 과연 수용할 것인가? 9일 무산된 조합원 총회가 10일 오후 2시 영도조선소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찬반투표 가결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는 잠정합의안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에 먼저 설명하고, 곧바로 조합원 총회를 열어 가결 여부를 결정지을 예정이었다. 잠정합의안이 가결되면,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자(김진숙·박성호·박영제·정홍형)들은 곧바로 내려오기로 했었다.

▲ 9일 한진중공업 노-사가 1년 가까이 끌어온 '정리해고 철회' 문제와 관련해 잠정합의한 가운데, 정리해고자들은 이날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본관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면서 투쟁 의지를 보였다. ⓒ 윤성효

해고자-비해고자, 잠정합의안 받아들이는 강도 다르다

그런데 경찰 때문에 노조(지회)의 계획은 무산됐다. 공권력이 85호 크레인 주변을 에워쌌던 것. 총회 참석을 위해 모여들든 조합원들은 85호 크레인으로 달려가 경찰과 마찰을 빚었고, 나중에 공권력은 물러났다.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체 조합원은 800여 명이고, 이 가운데 정리해고자는 94명이다. 찬반투표는 조합원 전체가 참여해 가결 여부를 결정짓는다. 85호 크레인 농성자들은 조합원 총회에서 가결되면 내려오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잠정합의안은 지난 10월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냈던 권고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정리해고자는 합의서 체결 1년 내 재취업’하고, 생계 지원비(2000만 원)는 1000만 원 우선 지급과 나머지는 3회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상대로 냈던 해고무효확인청구소송과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사건을 취하하는 정리해고자만 적용하기로 했으며, 고소·고발·진정사건은 쌍방이 취하하기로 했다.

또 노-사는 “(사측이)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한진중공업지회, 개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압류 포함)는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 합의에는 사측이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해 제기해 놓은 ‘손해배상’도 포함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합의서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름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번 잠정합의안을 두고,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르다. 비해고자는 찬성 쪽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찬성을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9일 영도조선소 주변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해고자들은 말을 아끼기도 했고,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도 보였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과 문철상 부산양산지부장,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장은 9일 오후 ‘정투위’와 간담회를 진행하다 중단했다. 당시 간담회 시작 전부터 잠정합의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울산공장 소속이었다고 밝힌 한 조합원은 “기분 나쁘다. 해고자의 생사여탈권을 왜 비해고자들이 갖게 되는 것이냐. 어제까지는 한마디 말도 없었는데, 갑자기 합의를 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정정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이것 얻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고 자체가 부당했던 것인데, 앞으로 1년이 아니라 바로 복직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면서 “하지만 전체 조합원의 뜻이 결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40대 한 해고자는 “잠정합의안에 대해 해고자들도 의견이 나뉜다. 나이가 들었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조금씩 입장 차이가 있다”면서 “간담회 때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어떤 형태든 결정이 나는 대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국성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생각하면, 여자가 300일 넘게 크레인 위에서 견뎌냈으니 대단하다. 김 지도위원한테 보답하는 길은 민주노조를 바로 세우고, 살맛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전에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는 정리해고자들이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처벌을 주장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10일 어떤 판단을 할지 궁금하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민주노동당 ‘잠정합의 환영’

부산지역 시민단체와 야당은 잠정합의를 반기는 입장이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이날 “경찰과 회사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인권을 존중하고 노사합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공권력 투입에 대해, 이 단체는 “신병확보를 위해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반인권적 작태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면서 “경찰과 회사는 즉시 김진숙 지도위원과 노조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회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한다고 했다. 이 ‘최소한’이라는 표현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안으로 인해 향후 노사가 다시 대립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노사합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은 대승적 차원에서 폐기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이 단체는 “회사도 애매한 표현으로 다시 노사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합의정신에 충실하기를 바란다”며 “한진중공업 노동조합도 대승적 차원에서 사태를 마무리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은 이날 “잠정합의를 환영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들은 “노사합의에 이르기까지 갖은 노력과 인내를 마다하지 않은 한진중공업 노사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격려와 환영의 인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합의는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끝까지 싸워왔던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단결투쟁의 결과이며, 정리해고 철회와 김진숙 지도위원의 무사안위를 위해 85호 크레인으로 희망버스 행렬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의 결과”라며 “정리해고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조작된 위기’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 온 재벌기업의 행태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시당은 “이제 그동안의 혼란과 분열을 수습하고 한진중공업 노사가 합심해서 영도조선소를 정상화시켜 한진중공업이 부산 제일의 향토기업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카테고리: 보도자료모음 | 댓글 남기기

[오마이뉴스]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무엇을 남겼나

노동자-시민-김여진과 날라리-트위터리언
‘절망의 연대’, 희망버스는 기적을 만들었다
[분석]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무엇을 남겼나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를 타러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환영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1년 가까이 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갈등이 마무리됐다. 사측은 3년간 수주가 되지 않아 경영이 어렵다며 구조조정(생산직 400명)을 단행했고, 희망퇴직에 이어 대규모 정리해고(94명)를 했다. 노동조합은 파업에 맞섰고, 크레인 고공농성 끝에 노사합의를 이루어냈다.

현재 노동계 최대 현안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다. 정리해고는 크고 작은 사업장마다 발생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정리해고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진중 노-사 양측은 10일 ‘정리해고자 1년 내 재취업’과 ’2000만 원 생계비 지원’ 등에 합의했다. 정리해고자들은 부당해고이기에 원직복직을 주장했지만, 이 정도 합의에 대해서는 ‘사실상 정리해고 철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 뭉쳐 투쟁…’정투위’ ‘가대위’도 한몫

▲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6월 12일로 158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13시간 동안 크레인 아래에 머문 뒤 떠나면서 한진중공업 조합원 가족들과 뜨거운 작별을 나누었다. ⓒ 윤성효

무엇이 이 성과를 만들어 냈나. 무엇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단결된 힘을 보인 결과다. 지난 6월 2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전 집행부(채길용 전 지회장)가 조합원 동의 없이 ‘현장복귀’ 선언을 해 갈등을 빚었지만, 선거를 통해 새 지도부(차해도 지회장)를 구성해 이번 노사 합의를 이끌어 냈다.

대규모 사업장마다 정리해고 갈등이 깊은데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례는 드물다. 이에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은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다른 사업장과 다르다. 뭉치다 보니 성과를 내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와 ‘한진중공업 가족 대책위’(가대위)가 똘똘 뭉쳐 투쟁했다. ‘정투위’는 조를 나눠 1인시위와 선전전을 벌이는가 하면 85호 크레인 앞을 24시간 지키기도 했다. 또 ‘가대위’ 소속 가족들은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해 부끄럽다”가 아니라 “부당한 정리해고이기에 당당하게 싸워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힘을 보탰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의 또 한 중심에는 85호 크레인이 있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5m 높이에서 309일, 박성호·박영제·정홍형씨가 중간층에서 137일째 농성을 벌였다.

8년 전(2003년 10월 17일) 고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로 85호 크레인은 살아서 내려오지 못하는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희망버스’를 포함한 국민의 관심 끝에 네 생명이 ‘건강하게’ 내려와 땅을 밟았다.

연대와 동참의 아름다움 보여준 ‘희망버스’

▲ 한진중공업 사측이 지난 6월 11일 용역경비 450여 명을 투입해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열리는 희망버스 행사 원천봉쇄에 나섰다. 사진은 정문을 뚫고 진입하는 용역경비원들. ⓒ 박민혁

5차례 출발한 ‘희망버스’는 정리해고 갈등에 희망을 만들었다. 정리해고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된 시민들이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85호 크레인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

부산시와 경제, 보수단체들은 희망버스가 ‘절망버스’라고 주장했다. 보수단체가 희망버스를 막으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경찰은 희망버스를 물대포 등으로 막았는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희망버스에 대한 탄압이 높으면 높을수록 눈덩이처럼 사람들이 더 모이거나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배우 김여진씨는 85호 크레인과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 100일째를 앞둔 지난 4월 10일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과 함께 영도조선소를 찾아 85호 크레인 중간층까지 올랐다. 이날 김여진씨는 ‘전국금속노동조합’이라는 글자가 적힌 모자를 쓰고 크레인에 올랐다. 그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풀려나기도 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노구를 이끌고 희망버스에 참가해 관심을 모았다. 백 소장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을 밟자 “이제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자”고 호소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에는 무엇보다 희망버스의 힘이 컸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희망버스에 감사하고 큰 용기를 얻었다”면서 “이제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전국을 돌며 희망을 전파하러 다닐 것이다. 더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버스 투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버스 기획단’ 김혜진씨는 “희망버스가 연대의식을 불어넣은 게 큰 힘이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완전히 철회된 것은 아니지만 현장으로 돌아가는 힘을 희망버스가 만들었다”면서 “정리해고가 우리 삶을 파괴하며 사회가 이런 방식으로 정리해고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희망버스는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 지난 6월 12일 새벽 희망버스를 타고 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집회에 참석한 배우 김여진씨. ⓒ 윤성효

독일연방 대통령 등 격려 메시지 … ‘트위터’로 관심 끌어

85호 크레인과 희망버스는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일본, 베트남, 태국 등의 외국 노동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희망버스’에 참가하거나 김 지도위원을 보기 위해 부산 영도까지 왔다.

크리스티안 볼프 독일 연방대통령이 김진숙 지도위원한테 격려 메시지를 보냈고,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 교수(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도 김 지도위원의 투쟁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지도위원은 미국 월가 ‘반자본주의 시위대’를 향해 전화로 연설하기도 했다.

▲ 김진숙 지도위원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트위터

85호 크레인과 김진숙 지도위원이 시민들의 관심을 받은 데는 트위터 등 ‘SNS’의 힘도 컸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85호 크레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을 알렸고 김여진씨 등 유명 인사들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생각을 트위터에 표현했다.

희망버스에 많은 사람이 모인 것도 트위터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시시각각 벌어지는 상황을 트위터에 올려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과 공유했다.

한진중 사태 해결에 여야 머리 맞대 … 정동영, 15차례 영도 방문

정치권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10월 7일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 권고안이 이번 노사 합의의 토대가 됐다. 국회 환노위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여야가 18대 국회 들어 유일하게 합의해서 처리한 사안이 한진중공업 사태라 할 수 있다.

국회 환노위 한나라당 간사 이범관 의원은 “노사가 대립하고 갈등하기보다 상생하고 화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노사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치문화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터진 뒤부터 모두 15차례 영도를 찾았다. 국회 청문회 때 정 의원은 조남호 회장을 쏘아붙이기도 했다. 정 의원은 경찰이나 경비원과 부딪히는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맞서기도 했다.

정 의원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땅 위에서 밥 한 끼 같이 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300일 넘게 혼자 거기에 있었다는 게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김 지도위원이 내려와서 다행이지만, 이 땅의 양심과 인도주의, 노동권이 35m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희망버스가 살렸고,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살렸다. 그러나 아직 내려오지 못한 게 있다. 그것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아직 남아 있는 과제다”고 덧붙였다.

정동영 의원은 “일반 시민들이 노동문제에 대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 서게 한 것이 희망버스”라며 “한진중공업 사태는 18대 국회에서 여야가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서 청문회도 하고 권고안을 만들어서 해결했다. 정치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불신이 생겼는데 이번에는 국회와 정치가 제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의 흐름을 처음으로 차단한 사건이다. 앞으로 공격적인 투쟁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대규모 정리해고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힘을 모아 연대하면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한진중공업 본관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환영객들을 향해 'V'를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그 옆에 정동영 민주당 의원, 그 뒤에 이정희 민노당 대표가 서있다. ⓒ 권우성

고용노동부 “노사자율교섭 애써” … 사측 “수주에 혼신 쏟아야”

노동당국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오길성 고용노동부 교섭협력관(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8일 저녁부터 노사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몇 번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합의가 나오지 않아 결렬되나 싶었는데, 9일 새벽 6시30분경 다시 만나자고 해서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 내용이면 더 앞당길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고용노동부는 노사 자율교섭의 판이 깨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고 덧붙였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이번 노사 합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철상 한진중공업 홍보팀장은 “이제부터는 수주를 하기 위해 전 임직원뿐만 아니라 노사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면서 “현재 수주해 놓은 물량이 없어 11월 중순부터 휴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럽 경기가 좋지 않아 선박 수주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사가 앞으로 자주 만나고 대화해서 상생해야 할 것이다. 회사도 노조의 입장에, 노조도 회사의 입장에 더 귀를 기울이고 함께하겠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온갖 루머로 힘들었다. 지난 1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담을 넘어 들어갔는데 트위터에서는 경찰이 월담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며 “개별기업의 노사 문제를 사회 이슈로 만들어 회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경영진과 노동자 그리고 그 가족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다. 거리 투쟁에 함께했던 ‘가대위’ 도경정 회장은 “이제 남편과 평범한 일상 생활을 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카테고리: 보도자료모음, 정보공유 | 댓글 남기기

[오마이뉴스]경찰, 85호 크레인 밑에 새까맣게…산통깼다 김진숙 체포조 배치, 한진중 ‘노사합의’ 무산

경찰, 85호 크레인 밑에 새까맣게…산통깼다
김진숙 체포조 배치, 한진중 ‘노사합의’ 무산
해고자들, 경찰과 대치하면서 ‘잠정합의안’ 노조총회 하루 연기

▲ 9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노사협상안에 대한 노조 총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경찰병력이 공장안에 진입해 김진숙씨가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 주위를 에워싸자, 해고노동자들이 경찰병력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결과적으로 경찰이 산통을 깬 셈이 되고 말았다. 1년 가까이 끌어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노사교섭을 통해 잠정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공권력 때문에 조합원 총회가 무산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경찰이 희망버스를 그렇게 막더니, 노사합의까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분통을 드러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9일 오전 잠정합의안을 이끌어 냈다. 잠정합의안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총회를 열어 찬반 투표를 거쳐 가결되면, 85호 크레인 농성자들을 내려오게 할 계획이었다. 고공농성 308일째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이날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조합원 총회에서 가결되면 더 있을 필요가 없다. 청소하고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노조측 교섭대표들은 이날 오후 3시50분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맞은편에 있는 건물 강당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아래 정투위)와 교섭 내용을 놓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또 영도조선소 안에 있는 단결의광장에서는 오후 4시경 조합원 총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경찰 병력이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경찰은 85호 크레인 밑으로 집결했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정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경찰은 업무방해와 건조물침입 혐의로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해 법대로 집행해 연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투위’ 조합원들은 간담회 도중 뛰쳐 나왔다. 조합원들은 영도조선소 본관 건물 현관을 통해 85호 크레인으로 향했고, 단결의광장에 있던 조합원들도 모여 들었다. 경찰이 85호 크레인 아래에 모여들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권력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는 내려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과 문철상 부산양산지부장,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장 등 간부들은 총회 무산을 선언했다. 금속노조(지회)는 공권력의 완전 철수와 사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이날 오후 늦게 한진중 사측은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한 것은 아니지만, 들어온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사측의 요청도 있었고, 크레인 농성자들의 신병 인도를 해야 하고, 소요가 예상되어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공권력 투입에 대해 정치권도 맹비난했다. 이날 한진중공업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이범관 의원과 민주당 간사인 홍영표 의원이 내려오기도 했다. 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심상정.노회찬 전 의원, 김정길 전 장관 등도 와 있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국회 권고안이 토대가 되어 노사 잠정합의를 이끌어 냈는데, 공권력의 행태는 국회 권고안까지 깔아뭉갠 것이다. 고공농성자들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여당도 적극 협조하기로 언약했고, 그런 차원에서 이범관, 홍영표 의원이 오늘 한진중공업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환영식은 못 보겠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공권력의 반인권력, 반인륜적 행태다. 지난 다섯 차례의 희망버스 때도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 노사협상 타결 마지막 순간까지 과잉대응하거나 공권력을 집행한 것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대표는 “경찰이 희망버스를 탄압하고 짓밟더니, 김진숙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이 손을 맞잡는 것을 방해했다”고 말했다.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희망버스 기획단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올 것 같다고 해서 왔다. 공권력이 투입돼서 못 내려 온 것인데, 이명박이 또 거짓말을 했다. 이제부터 이명박정부의 거짓말을 없애기 위해 희망버스를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지회)는 10일 오전 9시 ‘정투위’ 조합원과 간담회를 갖고 잠정합의안에 대해 설명한다. 박상철 위원장은 “오늘 간담회를 하다가 공권력이 투입되는 바람에 무산된 것이다. 10일 다시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합원 총회는 이날 오후 2시 영도조선소 단결의광장에서 열린다. 이날 총회 때는 그동안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정리해고자들도 참석하게 된다. 차해도 지회장은 “공권력 투입에 대해 사측이 사과를 한 셈이다. 10일 오전 정투위 간담회에 이어 조합원 총회를 열 것이며, 총회에 정투위 조합원들도 공장 안으로 들어오도록 회사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되면, 곧바로 85호 크레인 농성자들이 내려오게 된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성호.박영제.정홍형 동지는 조합원들과 함께 정문으로 와서 환영 행사를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 308일째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9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8신: 9일 오후 6시 20분]

경찰력의 회사 진입으로 인해 한진중공업 사태 타결이 하루 늦춰지게 됐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는 “내일(10일) 오전 9시 노조 교섭대표와 해고자 간담회를 재개하고, 오후 2시 조합원 총회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9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노사협상안에 대한 노조 총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경찰병력이 공장안에 진입해 김진숙씨가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 권우성

▲ 9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노사협상안에 대한 노조 총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경찰병력이 공장안에 진입해 김진숙씨가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 주위를 에워싸자, 해고노동자들이 경찰병력 철수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9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노사협상안에 대한 노조 총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경찰병력이 공장안에 진입해 김진숙씨가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 주위를 에워싸자, 해고노동자들이 경찰병력 철수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9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조합원 총회를 준비하는 노조원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욕봤다. 욕봤다. 마음 고생 많았지"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경찰의 ‘김진숙 체포’ 문제로 난항을 겪고있다.

노조 측과 간담회를 갖던 정리해고자 수십 명은 “김진숙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력이 85호 크레인 밑으로 집결했다”는 소식에 회사 본관 현관을 통해 크레인 밑으로 모여들었다.

해고자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바람에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던 조합원 총회도 무산되어 버렸다.

노조에 따르면, 조합원들이 총회를 위해 모이는 도중에 경찰이 크레인 밑으로 왔고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총회를 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흥석 노조 부지회장은 기자들에게 “크레인 밑에는 조합원 300여 명이 있고, 경찰은 일단 회사 북문 쪽으로 밀려난 상태”라며 “경찰력의 완전 철수와 회사의 사과가 없는 한 총회를 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경찰은 “사측이 병력 투입을 요청했다”고 말하는 반면, 회사는 “그런 요청을 한 바 없으며 경찰이 자진해서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한편, 한나라당 이범관(환노위 간사)·민주당 정동영·민노당 이정희 의원·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 등 정치인들이 김성회 한진중 부사장 등을 만났다. 정동영 의원은 “여권 채널에 경찰력을 빨리 빼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국회 합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카테고리: 보도자료모음 | 댓글 남기기